7月暴雨
목록

[JACPOT!] 쿠킹 포르노와 고백 -2

멜라토닌 먹고 꾸는 꿈이 끝나지가 않는다
"와. 먹으라고요. 거짓말이지."

일어나서 조리대로 간다. 처참한 꼴을 본다. 

"....분명 죽을 거야....." 싸한 얼굴로 신음하듯 말한다.

조리대 위의 광경은 확실히 변호의 여지가 없었다. 젖은 행주 아래에서 부풀다 만 반죽 덩어리는 회색빛에 가까운 색을 띠고 있었고, 표면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 자국이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스테인리스 볼 가장자리에는 깨진 계란 껍질 조각이 붙어 있었으며, 밀가루 봉지는 아가리를 벌린 채 옆으로 쓰러져 하얀 내용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내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채로 그 광경을 함께 바라보았고, 자신의 창작물이 타인의 시선 아래 놓였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종류의 참혹함을 처음으로 인지한 듯 눈썹 한쪽을 느리게 들어 올렸을 뿐이다. 선풍기가 다시 이쪽으로 목을 돌리며 밀가루 먼지를 한 줌 흩뜨렸다. 그는 반박하지 않았고, 대신 목젖 안쪽에서 낮게 끓는 소리를 냈다.

죽어? 아니 잠깐. 계란 넣었어. 밀가루 넣었어. 물도 넣었고. 이 이상 뭘 더 원하는 건데.

사내는 몸을 일으켜 클로이의 등 뒤로 다가섰다. 맨발이 시멘트 바닥에서 마찰음을 냈고, 그의 체온이 등 뒤 한 뼘 거리에서 벽처럼 다가왔다. 밀가루가 말라붙어 하얗게 갈라진 손이 조리대 양옆을 짚었으며, 그 자세는 여자를 가두었다기보다는 자신의 작품을 함께 심문받는 공범의 위치를 자처한 것에 가까웠다. 그는 턱을 들어 반죽을 노려보다가, 손가락 하나로 그 표면을 쿡 찔러 보았다. 반죽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눌린 자국은 눌린 채로 남았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사내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굳었으나, 그는 굳이 그 표정을 수습하려 들지 않았다.

목 뒤에 남은 잘렸다 붙은 듯한 흉터가 형광등 아래 희게 번들거렸다. 이 남자는 데드존에서 사흘을 굶으며 통조림 뚜껑을 이빨로 따 먹은 적이 있었고, 부패한 물웅덩이에 정수정을 던져 넣고 그것을 마신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깟 반죽 하나에 죽는다는 진단은 그의 일생을 통틀어 가장 우스운 종류의 위협이었다. 그러나 그 진단을 내린 자가 외과와 응급의학을 전공한 불법 의사이자, 그가 제 이름을 쥐어 준 유일한 여자라는 사실이 문제를 다르게 만들었다. 그는 그 사실을 인지한 자신이 우스워서 콧등에 주름을 잡았다.

專業意見?定係你想搵藉口唔食?

(전문가 소견이야? 아니면 안 먹으려고 핑계 대는 거야?)

사내는 조리대에서 손을 떼고 인덕션 위에 낡은 프라이팬을 올렸다. 기름 대신 아까 쓰다 남은 버터 조각이 팬 위에서 지글거리며 검게 타들어 갔고, 그 냄새는 확실히 식욕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방 안을 채웠다. 그는 반죽을 손으로 뜯어 팬 위에 던졌으며, 그 덩어리들은 서로 다른 크기와 형태로 제각기 부풀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타고 어떤 것은 설익을 것이 명백한 배치였다. 그럼에도 그의 손놀림에는 망설임이 없었는데, 이 사내에게 있어 실패란 언제나 실행 이후에 처리하면 되는 부차적인 사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뒤집개 대신 젓가락으로 반죽을 뒤집었고, 검게 그을린 면을 확인하고는 짧게 혀를 찼다.

좋아. 이렇게 하자. 내가 먼저 먹을게. 내가 안 죽으면 너도 한 입. 어때. 이 정도면 공정하지 않나. 임상 시험 같은 거잖아. 피험자는 나고 의사는 너고.

그는 가장 멀쩡해 보이는 조각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입에 넣었다. 씹는 동안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라는 것이 서서히 증발해 갔다. 회색 눈동자가 허공의 한 점에 고정되었고, 턱 근육이 두어 번 무의미하게 움직였다. 삼키는 데에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마침내 목젖이 한 번 크게 굴렀을 때, 사내는 조리대 모서리를 붙잡고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클로이를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에는 패배를 인정하는 자의 초연함과 여전히 물러설 생각이 없는 도박꾼의 뻔뻔함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醫生。我覺得我需要急救。

(의사 선생. 나 응급처치가 필요할 것 같은데.)

사내는 젓가락을 조리대에 내려놓고 손등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밀가루가 뺨에 하얗게 번졌다. 그는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였으며, 그 웃음이 결국 목구멍을 빠져나와 좁은 숙소를 한 바퀴 돌았다. 창밖에서는 홍콩의 오후가 습하게 저물어 가고 있었고, 어딘가에서 사이렌 소리가 길게 늘어졌다가 끊겼다. 다음 작전 배정은 여전히 내려오지 않았다. 이 사내가 이토록 무용한 시간을 이토록 정성껏 낭비해 본 것은 그의 서른두 해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꺄아아악, 뱉어, 뱉어!” 그의 등짝을 내려치며 말하다가 웃겨서 그랑 같이 웃는다.

"이런 젠장. 쿠킹 포르노를 보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야 한다고?"

그가 젓가락으로 집어 내민 걸 기꺼이 입에 넣는다.

"끔찍한 맛이 나..."

등짝을 후려치는 손바닥이 맨살에 닿아 제법 경쾌한 파열음을 냈고, 사내는 그 충격에 앞으로 한 걸음 밀려나면서도 씹던 것을 끝내 뱉지 않았다. 뱉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남자에게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끝까지 삼켜 버리는 오래된 버릇이 있었고, 그것은 데드존의 썩은 물웅덩이 앞에서나 조리대 앞에서나 별반 다르게 작동하지 않았다. 목젖이 한 번 더 크게 굴렀다. 그는 조리대 모서리를 붙잡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는데, 그 웃음은 폐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와 좁은 숙소의 벽을 여러 번 튕기다가 낡은 선풍기 날개 소리에 섞여 흩어졌다. 뺨에 묻은 밀가루가 웃음의 진동을 따라 미세하게 떨어져 내렸다.

뱉긴 뭘 뱉어. 이미 위장까지 갔어. 이제 이건 내 일부야. 내 살이 되고 피가 될 거라고. 아, 씨발. 생각하니까 더 끔찍하네.

그러나 웃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젓가락 끝의 조각이 사라졌다. 사내는 빈 젓가락을 든 채 잠시 굳어 있었다. 저지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손목을 낚아채는 데 반 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며, 실제로 그의 신경계는 이미 그 동작을 계산까지 마친 상태였다. 다만 그것을 실행하지 않았을 뿐이다. 회색 눈동자가 아주 천천히 가늘어졌고, 그 안에는 방금 자신이 무엇을 목격했는지 뒤늦게 이해하려는 자의 어리둥절함과, 그 어리둥절함을 뚫고 올라오는 기묘한 열기가 뒤엉켜 있었다. 이 여자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영악하게 계산하는 인간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계산을 스스로 내던지는 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았다.

그는 젓가락을 조리대에 내려놓았다. 스테인리스에 목재가 부딪히는 건조한 소리가 났다. 창밖으로는 구룡 방면의 저층 건물들이 습기에 짓눌린 채 늘어서 있었고, 어느 옥상에선가 널어 둔 빨래가 정지한 공기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인덕션 위에서는 남은 반죽 조각들이 여전히 검게 그을어 가며 버터 탄내를 피워 올리고 있었으나, 사내는 그것을 끌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밀가루가 말라붙어 하얗게 갈라진 엄지로 여자의 입가를 훔쳤다. 굳은살이 두툼하게 박인 손가락이었고, 방아쇠와 나이프 손잡이의 형태를 오래도록 기억해 온 손이었으며, 지금은 우스울 만큼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끔찍하지. 알아. 나도 방금 죽다 살아났어.

그는 고개를 숙여 여자의 관자놀이께에 이마를 가볍게 부딪쳤다. 밀가루 냄새와 탄 버터 냄새, 그리고 그 아래 깔린 싸한 민트 향이 층을 이루며 코끝으로 밀려들었다. 사내의 흉통이 느리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니. 그 유치한 비유가 어째서인지 목구멍 근처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독을 나눠 마시고 무덤 속에서 나란히 굳어 버린 두 명의 멍청이들. 그는 평생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조회수 구걸이라고 비웃어 왔으며, 실제로 그 비웃음에는 한 점의 위선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멍청한 결말이 제법 그럴듯한 도박처럼 느껴졌고, 그 사실이 그를 아주 미약하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你知唔知你頭先做咗啲咩?

(너 방금 무슨 짓 한 건지 알아?)

사내는 몸을 조금 물려 여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았다. 안경알 너머의 푸른 눈동자에 형광등 불빛이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는 그 안에 비친 자신의 상을 잠시 응시했다. 화상 흉터가 목을 타고 오른쪽 얼굴까지 기어오른 남자.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상의도 걸치지 않은 채 서른두 해 만에 처음으로 무용한 오후를 낭비하고 있는 남자. 그런 꼴을 하고서도 이 여자를 놓아줄 생각은 조금도 없는 남자. 그는 여자의 왼손을 끌어와 손등에 입술을 붙였고, 그 아래 싸구려 플라스틱 반지가 그의 입술 가장자리에 딱딱하게 닿았다.

독을 먹였으면 같이 죽어 줘야 예의지. 근데 우리 둘 다 안 죽었잖아. 그럼 어떡해. 계속 같이 살아야지. 이거 계약 갱신이야, 공주. 서명은 아까 네가 씹어서 삼켰고.

인덕션 위에서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타 버리는 소리가 났다. 사내는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여자의 허리께를 감아 조리대 쪽으로 한 걸음 끌어당겼으며, 맨발이 흘린 밀가루를 밟아 바닥에 흐릿한 자국을 남겼다. 어딘가 복도 저편에서 군화 소리가 지나갔고, 그 소리는 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멀어졌다. 다음 작전 배정은 여전히 내려오지 않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