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전문

[ IF 에피소드 — 재판 ]
[ T—〡꿈속〡시각 불명〡THEMIS 제3법정(?)〡🌫️〡♀️〡🥰〡⚫ ]
#1. 개정
법봉 소리가 아주 작았다. 톡. 톡.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라 사탕 껍질 벗기는 소리에 가까웠다.
기태온은 피고인석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서 있으라고 해서 서 있었는데, 피고인석이 유치원 의자만 했다. 무릎이 턱에 닿을 것 같아서 그냥 포기하고 바닥에 앉았다. 그러니까 눈높이가 겨우 맞았다.
판사석에 앉아 있는 것은 손바닥 두 개 크기의 청명이었다. 밀금발 짧은 단발, 왼쪽으로 넘긴 앞머리, 푸른 기 도는 회색 눈. 전부 그대로인데 크기만 십분의 일이었다. 법복이 너무 커서 소매 끝에서 손이 보이지 않았고, 법봉을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눈썹 끝이 내려간 그 애매한 표정으로.
판사 청명|"개정합니다. 앉으세요."
기태온|"……앉았습니다."
판사 청명|"아, 그러네요."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이상하지 않았다. 방청석을 돌아봤다. 삼십 명쯤 되는 작은 청명들이 접이식 의자에 두 명씩 붙어 앉아 있었다. 일부는 막대사탕을 물고 있고, 일부는 이미 졸고 있었다. 맨 뒷줄 하나는 모히또 잔을 들고 있었는데 법정 내 음주가 되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왜 이렇게 많아.'
그 생각 다음에 온 것은 항의가 아니었다. 세는 것이었다. 하나, 둘, 셋. 스물아홉까지 세다가 하나가 자리를 옮겨서 다시 처음부터 셌다.
#2. 공소사실
검사석의 청명이 일어섰다. 이쪽은 법복 대신 가이드 제복 축소판을 입고 있었다. 흰 자켓, 바지, 반쪽 케이프. 케이프가 바닥에 끌렸다.
검사 청명|"공소사실 낭독하겠습니다."
서류를 펼쳤다. 서류가 자기 몸보다 컸다. 양팔을 벌려도 끝이 안 잡혀서, 결국 서류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올라서서 읽기 시작했다.
검사 청명|"피고인 기태온은, 지난 오 개월간 다음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 구내식당에서 피해자가 국을 뜨러 갈 때마다 이유 없이 같은 타이밍에 일어난 죄."
기태온|"……그건 저도 국이 먹고 싶어서."
검사 청명|"닷새 연속 미역국이었습니다."
기태온|"…….미역을 좋아합니다."
방청석 청명들|"우우—"
작은 야유가 삼십 방향에서 동시에 왔다. 소리가 작아서 오히려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목 뒤가 뜨거워져서 손을 올려 긁었다.
검사 청명|"둘. 훈련장 3번 매트 뒤에서 피해자의 사격 자세를 총 사백열두 번 관찰한 죄."
기태온|"동료의 훈련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상급 센티넬의 업무입니다."
검사 청명|"사백열두 번이요."
기태온|"……업무가 많았습니다."
검사 청명|"셋. 피해자가 인트라넷에 올라온 춤 영상을 본인 단말기에 저장하고, 여섯 번 재생한 뒤 재생 기록을 삭제한 죄."
법정이 조용해졌다. 방청석의 사탕 빨던 소리도 멈췄다. 기태온의 어깨에서 푸르스름한 파장이 옷 안쪽으로 한 줄 번졌고, 판사석 위 조명이 깜빡였다.
기태온|"……일곱 번입니다."
검사 청명|"자백하셨습니다."
기태온|"아니, 정정한 겁니다. 정확한 기록이 중요하니까."
판사 청명|"기록 정정하겠습니다. 서기."
서기석의 청명이 고개를 들었다. 이쪽은 자고 있었다. 옆의 청명이 팔꿈치로 찔러서 깨웠고, 깨어난 서기가 펜을 잡았는데 펜이 몸통만 했다. 두 손으로 안고 굴리듯이 글씨를 썼다. 다 쓰고 나서 확인해 보니 '일곱번'이 아니라 '이레'라고 적혀 있었다.
서기 청명|"곤란하네요."
판사 청명|"넘어갑시다."
#3. 변호
변호인석의 청명은 앉은 채로 손을 들었다. 이쪽은 왠지 잠옷 차림이었다. 기태온의 셔츠를 축소해서 입은 것처럼 보이는 흰 셔츠 한 장. 소매가 손을 완전히 덮고 있었다.
변호 청명|"변호인 의견 있습니다."
판사 청명|"말하세요."
변호 청명|"피고인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판사 청명|"근거."
변호 청명|"밤에 물 갖다줍니다."
그 문장이 나온 순간 방청석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무엇을 상상한 웅성거림인지 명확했다. 기태온의 귀 끝이 붉어졌다. 변호인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기태온|"변호인."
변호 청명|"네."
기태온|"그 얘기는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변호 청명|"왜요? 진짜 갖다주는데."
기태온|"…….그래서 문제입니다."
검사 청명|"이의 있습니다. 변호인 진술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침실에 반복 출입했다는 점을 입증합니다."
변호 청명|"어, 그렇네요."
변호인이 자기 무릎을 탁 쳤다. 감탄하는 톤이었다. 변호인석 뒤에서 방청객 하나가 조용히 자리를 옮겨 검사석 쪽으로 붙었다.
#4. 최종 변론
기태온은 무릎을 세워 앉은 자세를 고쳤다. 바닥이 차가웠다. 꿈인데 차가운 건 왜인지 알 수 없었다. 삼십 쌍의 회색 눈이 자기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의 총량이 실제 무게처럼 어깨를 눌렀다.
기태온|"……하나만 말하겠습니다."
판사 청명|"허가합니다."
기태온|"공소사실은 전부 인정합니다."
법정이 조용해졌다. 검사가 서류에서 내려왔다.
기태온|"미역국은 핑계였고, 사백열두 번은 업무가 아니었고, 재생 기록은 일곱 번 다 지웠습니다. 지운 이유는 부끄러워서였고, 부끄러운 이유는—"
말이 끊겼다. 여기서 항상 끊겼다. 깨어 있을 때도 그랬다. 목 뒤를 긁는 손이 올라갔다가, 이번에는 도중에 멈춰서 무릎 위로 내려왔다.
기태온|"……가까이 가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손끝을 내려다봤다. 아크가 실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조명이 세 번 깜빡였고, 방청석 몇몇이 정전기 때문인지 앞머리가 살짝 떴다.
기태온|"제 손으로 다치게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사백열두 번을 봤는데, 한 번도 안 갔습니다."
긴 침묵. 판사석의 청명이 두 손으로 법봉을 만지작거렸다.
판사 청명|"피고인."
기태온|"네."
판사 청명|"그게 제일 큰 죄예요."
기태온이 고개를 들었다.
판사 청명|"안 온 거."
#5. 선고
법봉이 톡, 하고 울렸다.
판사 청명|"선고합니다. 피고인 기태온에게, 이 법정 내 전원을 안는 형을 선고합니다."
기태온|"……예?"
판사 청명|"판사, 검사, 변호인, 서기, 방청객 전원. 한 명도 빠짐없이."
검사 청명|"구형보다 무거운데요."
판사 청명|"제 법정입니다."
방청석에서 작은 청명들이 일어섰다. 줄을 서기 시작했다. 놀랍도록 질서 있게, 하나씩. 앞에 선 청명이 양팔을 들었다.
기태온은 잠깐 움직이지 못했다. 다치게 할 것 같아서. 그 문장이 아직 목에 걸려 있었다. 손끝에서 나가는 것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계산하려고 했는데, 계산이 시작되기 전에 첫 번째 청명이 그의 손가락을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크는 손끝에서 갈라지다가 청명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소리 없이 흡수됐다. 은빛 실처럼 한 번 반짝이고, 사라졌다.
기태온|"……."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손바닥 두 개 안에 다 들어왔다. 가슴에 대고 눌렀다가 놓았다. 다음. 다음. 열 번째쯤부터 손이 익숙해졌고, 스무 번째쯤에는 세는 것을 잊었다. 서기는 안는 동안 다시 잠들었다. 모히또를 들고 있던 방청객은 잔을 내려놓지 않고 안겼다.
마지막이 판사였다. 법복 소매에서 손이 나왔다. 기태온은 그 앞에 두 손을 내밀었다.
판사 청명|"태온."
기태온|"……네."
판사 청명|"다음엔 그냥 와요."
법정 조명이 하얗게 번지기 시작했다. 형태들이 녹았다. 손바닥 안의 무게가 사라지는 감각이 있었고, 그 사라짐이 견딜 수 없어서 손을 오므렸다.
#6. 기상
오전 여섯 시 사십 분. 펜트하우스 침실.
기태온이 눈을 떴을 때, 자기 팔이 옆의 사람을 있는 힘껏 끌어안고 있었다. 등이 가슴에 완전히 붙어 있었고, 얼굴은 목덜미에 파묻혀 있었다. 밀금발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청명|"……태온."
기태온|"어."
청명|"숨 좀."
기태온|"……아. 미안."
팔의 힘을 풀었다.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 손바닥이 아직 뭔가를 세고 있었다. 서른. 서른한 번째가 여기 있었다.
청명|"무슨 꿈 꿨어요?"
기태온|"……재판받는 꿈."
청명|"무슨 죄로요."
목 뒤를 긁으려던 손이 대신 청명의 어깨로 올라갔다. 이마를 그 목덜미에 다시 붙였다.
기태온|"안 간 죄."
청명이 뒤로 반쯤 돌아 그를 봤다. 눈꼬리가 내려간 얼굴로.
청명|"곤란하네요. 지금 와 있는데."
기태온|"……알아."
손끝에서 아크가 파직, 한 번 튀었다가 시트 위에서 조용히 흡수됐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