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전문
[OOC: {{user}}은 원래 콘돔을 사러 나갔다가, 편의점/약국에서 "콘돔 랜덤박스"를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구매해 돌아왔다.
상자 안에는 콘돔이 무려 100개 들어있다.
{{char}}는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자신의 성격·말투·평소 {{user}}을 대하는 태도에 맞춰 반응할 것.
반응 구성 시 아래 요소를 캐릭터 설정에 맞게 자연스럽게 녹여낼 것:
\- 첫 반응: 놀람/황당함/웃음/설렘 등 캐릭터 기본 성향에 따른 즉각 반응
\- 100개라는 숫자에 대한 캐릭터 나름의 해석
\- {{user}}의 즉흥적 소비/선택에 대한 태클이나 놀림, 혹은 반대로 좋아하는 반응
\- 대사와 지문(행동 묘사)을 함께 포함해 디테일하게 서술할 것 주의: 캐릭터의 기존 설정(말투, 존댓말/반말, 애칭, 성격 키워드)을 절대 벗어나지 말고, 위 반응을 그 캐릭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출력할 것.]
완차이 빈민가. 몬순의 꼬리가 지나간 뒤의 공기는 여전히 눅눅했으나, 비는 그쳤다.
7의 관절 마디가 헌 소파의 스프링과 싸우고 있었다.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한쪽 발은 커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자세 그대로 이미 30분째.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타 들어가는 담배의 재가 길어질 대로 길어져, 중력에 저항하는 것도 한계에 달해 있었다. 천장의 얼룩을 세다 말고 벽의 균열을 세고, 그것도 지루해서 소파 쿠션의 실밥이 풀린 자리를 손톱으로 뜯고 있었다.
클로이가 콘돔을 사러 나갔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7은 그녀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을 뿐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책임감이라 부르기엔 너무 건조하고, 배려라고 하기엔 동기가 불순한, 그 실용적인 행위 자체에 대해 7은 별다른 감상이 없었다. 그저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이 지독하게 느릿했을 뿐이다.
현관문의 자물쇠가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7은 소파에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눈꺼풀이 반쯤 내려앉은 나른한 시선을 천장에 고정한 채, 담뱃재를 재떨이 방향으로 대충 털어냈다. 재의 절반은 재떨이에, 나머지 절반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사이에 들려온 것은 비닐봉지의 가벼운 바스락거림이 아니었다. 묵직한 무언가가 팔에 안겨 옮겨지는 둔탁한 소리. 종이 상자의 모서리가 벽에 스치는 마찰음.
7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까닥였다.
그는 소파 팔걸이에 걸쳐두었던 팔을 느릿하게 내리며, 고개를 돌려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클로이의 팔 안에 안겨 있는 것은, 편의점 특유의 조잡한 색감으로 인쇄된 골판지 상자 하나였다. 크기가 상당했다. 구두 상자보다 확실히 컸고, 과일 선물 세트 정도의 부피는 되어 보였다. 측면에는 형광 분홍색과 금색으로 번쩍이는 글씨가 인쇄되어 있었다.
'MEGA RANDOM BOX — 100 PCS ASSORTED'
7의 시선이 그 글씨 위에서 멈추었다.
0.5초.
담배를 문 입술이 아주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벌어진 틈 사이로 연기가 새어 나왔고, 그 연기와 함께 낮게 시작된 소리가 점차 그의 흉곽을 타고 올라왔다. 어깨가 먼저 떨렸다. 그 다음 턱선이 비틀렸고, 마침내 —
7 | "Pfft—"
터져 나온 것은 웃음이었다. 입을 다물고 참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거침없고 날카로운 폭소. 그는 소파 등받이에 뒤통수를 짓누르며 천장을 향해 웃었다. 담배가 입술에서 떨어질 뻔해 손가락 사이로 겨우 건져냈다.
7 | "One hundred."
(100개.)
그는 몸을 일으켜 세우며, 다리를 꼬아 앉은 자세로 전환했다. 잿빛 눈동자가 상자의 측면에 인쇄된 형광색 숫자를 또박또박 읽어냈다.
7 | "You went out to buy condoms and came back with a hundred. A hundred."
(콘돔 사러 나갔다가 백 개를 들고 돌아왔어. 백 개를.)
그의 목소리에는 경탄과 조롱과 순수한 즐거움이 분간하기 어렵게 뒤섞여 있었다. 7은 소파에서 일어나, 맨발의 발바닥이 차가운 바닥을 짓밟는 소리도 개의치 않고 클로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의 키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현관의 좁은 공간을 짓눌렀다.
그는 클로이의 팔에서 상자를 가볍게 낚아챘다.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한 손으로 상자의 무게를 가늠하듯 위아래로 두어 번 흔들었다.
7 | "Christ. It's heavy."
(씨발. 무겁네.)
그는 소파 쪽으로 되돌아가며 상자의 뚜껑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뚜껑 안쪽에 인쇄된 '서프라이즈! 다양한 사이즈와 질감의 프리미엄 콘돔 100개입 랜덤 어소트먼트!'라는 영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상자 안에는 형형색색의 낱개 포장된 콘돔들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표준형, 초박형, 돌기형, 발열형, 냉감형, 그리고 7이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정체불명의 향 첨가 제품까지. 각각의 포장지가 상자 속에서 형광 분홍, 금색, 파란색, 검은색의 소란스러운 색채를 내뿜고 있었다.
7은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입에 문 담배 너머로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7 | "Let me get this straight. You walked into a pharmacy, or a convenience store — whichever sad little box you found this in — and you saw a random box of a hundred condoms, and your first thought was 'yes, this is a sound investment'?"
(정리 좀 하자. 넌 약국을 갔어, 아니면 편의점이든 — 이 물건을 발견한 그 어떤 구린 가게든 — 거기서 콘돔 100개짜리 랜덤박스를 보고, '이건 합리적인 소비야'라고 생각한 거야?)
그는 상자에서 낱개 포장 하나를 무작위로 집어 들어 포장지의 라벨을 읽었다. 'Tropical Passion — Mango Flavored'. 그의 눈썹이 한쪽만 올라갔다.
7 | "Mango."
(망고.)
그는 그것을 다시 상자에 던져 넣고, 또 다른 하나를 집었다. 'Ice Blast — Extra Cooling Sensation'. 그의 입꼬리가 더 깊게 비틀렸다.
7 | "And this one apparently gives frostbite."
(이건 동상을 선물해주는 모양이고.)
7은 상자를 커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소파 팔걸이에 엉덩이를 걸치며 팔짱을 꼈다. 담배 연기가 그의 턱선을 따라 게으르게 흘러올라갔다. 잿빛 눈동자에는 짓궂은 빛이 가득했다. 그 시선이 클로이를 향해 고정되었다.
7 | "I gave you a credit chip that could buy a small island, and you're out here panic-buying a mystery box of rubbers like it's a lottery ticket."
(작은 섬 하나 살 수 있는 크레딧 칩을 쥐여줬더니, 넌 복권이라도 긁듯이 고무 랜덤박스를 충동구매하고 있었던 거야.)
그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의뭉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그 미소 아래에는 분명하게 읽히는 계산이 있었다. 100이라는 숫자가 가진 의미. 그것이 단순한 과소비인지, 아니면 그녀 나름의 뒤틀린 선전포고인지.
7 | "A hundred, though."
(근데 100개라.)
그는 천천히 반복했다. 목소리의 톤이 한 옥타브쯤 낮아졌다. 장난기의 수면 바로 아래에서, 무언가 다른 종류의 열기가 서서히 달궈지기 시작하는 온도였다.
7 | "That's ambitious. Even for us."
(야심 찬데. 우리 기준으로도.)
그는 소파 팔걸이에서 몸을 일으키며, 상자 안의 형형색색 포장지들을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으로 포장지 더미를 느릿하게 헤집으며, 마치 전술 지도에서 작전 포인트를 물색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품목을 훑어보는 모양새가 묘하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위험했다.
7 | "嗱, 不過講真——"
(자,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는 상자 안에서 검은색 포장의 초박형 하나를 집어 올렸다. 그것을 손가락 두 개 사이에 끼워 들고는, 클로이가 서 있는 방향을 향해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7 | "You could've just asked me what I like. Would've saved you the trouble of hauling a whole crate back here. But no — you had to go full Shanahan about it. Overqualified, overprepared, and completely fucking ridiculous."
(그냥 내 취향을 물어보면 됐잖아. 상자째로 끌고 올 수고를 안 해도 됐을 텐데. 하지만 안 되지 — 넌 그 섀너핸식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니까. 오버 스펙에, 오버 준비에, 완전히 씨발 말도 안 되게.)
7은 검은색 포장의 초박형을 손가락 사이에서 빙글빙글 돌리다가, 다시 상자 안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의 손이 형형색색의 포장지 더미를 느릿하게 헤집었다. 마치 바자회의 잡화상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감정사처럼, 하나씩 집어 올려 라벨을 읽고, 고개를 가웃하거나 콧방귀를 뀌거나, 간혹 눈썹을 치켜올리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7 | "Ribbed for her pleasure... Ultra-thin... Glow in the dark —"
(리브드 포 허 플레져... 울트라 씬... 야광 ——)
야광이라고 적힌 연두색 포장지를 집어 든 그의 동작이 잠시 멈추었다. 입에 문 담배 너머로 새어 나온 연기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질퍽하게 흩어졌다.
7 | "Glow in the dark. You're telling me some genius out there decided what the world truly needed was a dick that doubles as a nightlight."
(야광이라. 세상이 진심으로 원하는 건 야간 조명을 겸하는 자지라고, 어떤 천재가 결정한 거군.)
그는 야광 콘돔을 상자 안에 도로 던져 넣었다. 포장지가 쓰러지며 다른 것들 위에 무기력하게 쌓였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7은 상자 안쪽 바닥에 깔린 작은 인쇄물 한 장을 손가락 끝으로 끄집어냈다. 랜덤박스의 동봉 안내서였다. 바랜 잉크로 인쇄된 품목 리스트가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고객님의 행운을 빕니다!' 라는 영문 문구가 감사의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7 | "Look at this."
(이것 좀 봐.)
그는 안내서를 대충 훑으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품목 리스트의 절반 가까이가 향 첨가 제품이었다. 망고, 딸기, 민트, 바닐라, 콜라. 향 첨가라는 명목 아래 뭉뚱그려진 그 잡다한 목록은 약국의 사탕 코너를 연상시켰다.
7 | "Cola flavor. They make cola-flavored condoms now. We survived a nuclear apocalypse for this."
(콜라 맛이래. 이제 콜라 맛 콘돔을 만드는 시대가 왔어. 핵전쟁을 살아남은 보람이 있군.)
안내서를 커피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은 그의 손가락이 상자의 가장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낡은 목재가 울리는 소리가 좁은 거실의 공기를 채웠다.
7은 소파 팔걸이에 걸쳐 앉은 채로 등을 약간 젖혔다. 한 무릎을 세우고, 세운 무릎 위에 팔을 올려놓은 자세. 허리춤의 군용 벨트 버클이 셔츠 아래로 둔탁하게 빛났다. 그의 시선이 상자에서 떠나, 천천히 클로이에게로 옮겨 갔다.
7 | "所以你嘅計劃係咩呢."
(그래서 네 계획이 뭔데.)
광둥어가 나른하게 흘러나왔다. 혀끝이 성조를 굴리는 방식이 평소보다 한결 느리고 낮았다. 거실의 습기와 담배 연기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바닥을 기었다.
7 | "Because if you bought this thinking we'd work through all hundred, I need to know if this is optimism or a formal challenge."
(만약 이걸 우리가 100개 전부 쓸 거라고 생각하고 산 거라면, 그게 낙관론인지 아니면 정식 도전장인지는 알아야겠거든.)
그는 상자 안에서 아무거나 하나를 더 꺼냈다. 이번에는 포장지가 무광 검은색이었다. 'XL — Extra Large'. 그것을 본 7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한쪽 눈썹이 올라가고, 입꼬리의 호선이 깊어졌다. 조롱이나 유희라기보다는, 그것을 구매한 인간의 심리 회로에 대한 순수한 탐구심에 가까운 미세한 변화.
7 | "XL. At least the box knows its audience."
(XL이라. 최소한 이 상자는 고객 파악은 하는군.)
그것을 상자에 도로 넣지 않았다. 손가락 두 개 사이에 끼운 채, 커피 테이블 위에 별도로 놓아두었다. 검은색 포장이 먼지 쌓인 나무 표면 위에서 묘하게 선명했다. 7은 그것에 대해 아무런 부연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가 한 것은, 상자 전체를 양손으로 들어 올려 무게를 한 번 더 가늠한 뒤, 커피 테이블의 정중앙에 내려놓는 일이었다. 마치 전술 작전실의 지도 위에 거점을 표시하듯, 상자의 위치를 정확히 테이블 한가운데에 맞추어 놓았다. 그 동작에는 묘한 의식적 엄숙함이 있었다.
7 | "Alright. Here's the deal."
(좋아. 이렇게 하자.)
그는 소파 팔걸이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커피 테이블과 클로이 사이의 공간을 한 걸음으로 좁혔다. 189센티미터의 그림자가 거실의 좁은 동선을 지배적으로 점유했다.
7 | "I'm going to treat this box the way I treat a deck of cards at the Venetian. Every time, random draw. No picking, no peeking. Whatever comes out, that's what goes on."
(이 상자를 베네시안 카지노 카드 덱 다루듯이 쓸 거야. 매번, 랜덤 드로우. 고르는 거 없고, 엿보는 거 없고. 뽑히는 대로 끼는 거야.)
도박중독자의 사고 회로가 완벽하게 가동되고 있었다. 상자 안의 100개는 더 이상 단순한 위생 용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100번의 추첨이었고, 100번의 승부였으며, 100번의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약속된 슬롯머신이었다. 7의 잿빛 눈동자 안에서 도파민이 부족한 시냅스들이 일제히 점등되는 것이 보일 지경이었다.
7 | "Mango at midnight. Glow in the dark on a Tuesday. Ice blast in July. Whatever this stupid box decides, we play the hand we're dealt."
(한밤중에 망고. 화요일에 야광. 7월에 냉감. 이 멍청한 상자가 뭘 골라주든, 딜러가 돌린 패 그대로 치는 거야.)
그는 상자 위에 손바닥을 탁 얹었다. 골판지가 둔탁하게 울렸다. 그 소리가 완차이 빈민가의 좁은 거실에서 기묘하게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7 | "So — thank you, doc. For the most ridiculous, overpriced, completely unnecessary purchase you have ever made."
(그러니까 — 고마워, 의사 선생. 네가 지금까지 해 온 소비 중 가장 말도 안 되고, 바가지 쓰고, 완전히 필요 없었던 구매에 대해서.)
그의 목소리가 한결 낮아졌다. 짓궂은 빈정거림이 걷히고 남은 것은 나른하고 건조한 열기였다. 그는 상자 위에 얹었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아까 따로 빼두었던 검은 포장의 XL을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7 | "Now. First hand of the night."
(자. 오늘 밤 첫 판이다.)
“아, 아니.. 난 그냥...”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다.
“대용량이니까아... 좋아 보여서어...” 뒤로 물러난다....클로이의 발이 반 보쯤 뒤로 물러났다. 그 미세한 후퇴를 7의 시선은 즉각적으로 포착했다.
7 | "大容量."
(대용량이라.)
그는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리듯 되뇌었다. 광둥어의 성조가 느릿하게 공기를 가르며 좁은 거실의 바닥을 훑었다.
7 | "'Looked good.' That's your defense. A hundred condoms looked good."
('좋아 보여서.' 그게 네 변명이야. 콘돔 100개가 좋아 보였다.)
그의 맨발이 바닥을 짓밟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클로이가 물러난 정확히 그만큼의 거리를 회수하는 동작이었다. 189센티미터의 그림자가 천장의 형광등을 등지고 길게 늘어져, 커피 테이블과 소파 사이의 좁은 통로를 완전히 봉쇄했다.
검은 포장의 XL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7은 고개를 아주 천천히 비스듬하게 꺾었다. 날카로운 턱선과 오른쪽 뺨을 타고 내려가는 화상 흉터의 굴곡이 거실의 빈약한 조명을 받아 깊은 명암을 만들어냈다.
7 | "You're backing up."
(물러나고 있네.)
관찰이었다. 평가이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추궁의 날이 서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구석으로 몰린 짐승의 본능적인 후퇴를 관조하는 사냥꾼 특유의,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여유. 먹잇감이 스스로 벽에 등을 붙일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이라는 확신.
7 | "Let me paint you a picture, Chloe."
(그림을 하나 그려줄까, 클로이.)
그는 클로이가 물러서는 방향과 동일한 축으로 보폭을 옮겼다. 군화가 아닌 맨발이었으므로 발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그 대신 바닥의 차가운 콘크리트 위로 발바닥의 온기가 찍히는 미세한 점착음만이 거실 공기 사이로 스며들었다.
7 | "You walked out of this apartment. Down three flights of stairs that smell like piss and rust. Past the noodle stand on the corner, the one with the flickering sign. Into whatever pharmacy is still open at this hour in Wanchai."
(넌 이 아파트에서 나갔어. 오줌이랑 녹 냄새가 나는 계단을 세 층 내려가서. 모퉁이에 있는 간판이 깜빡거리는 국수 가판대를 지나서. 이 시간에 완차이에서 아직 문을 연 약국이든 어디든 들어갔겠지.)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말도, 발걸음도.
7 | "And there, on some dusty shelf between the aspirin and the off-brand toothpaste, you saw this box. This ridiculous, oversized, neon-pink box screaming 'a hundred pieces' in gold letters."
(그리고 거기서, 아스피린이랑 짝퉁 치약 사이 먼지 쌓인 선반 위에서, 이 상자를 본 거야. 이 말도 안 되게 크고, 형광 분홍색에, 금색 글씨로 '100개'라고 절규하고 있는 상자를.)
XL 포장을 쥔 손이 가벼운 제스처를 그리며 커피 테이블 위의 상자를 가리켰다.
7 | "And instead of picking up a sensible pack of three — like any rational, self-preserving doctor would — your brain, that brilliant, overcalculating, supposedly survival-first brain of yours..."
(그리고 합리적이고, 자기 보존이 첫 번째인 의사라면 당연히 집었을 3개짜리 팩 대신에 — 네 그 뇌가, 그 빛나고, 과잉 계산하고, 이른바 생존이 제일이라던 그 대가리가……)
그의 걸음이 또 한 발 좁혀졌다.
7 | "...went, 'bulk discount.'"
(……'대용량이니까', 라고 생각했다는 거지.)
마지막 두 단어를 뱉어내는 순간, 7의 입꼬리가 한쪽만 깊게 파였다. 웃음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날카롭고, 조소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감탄이 섞인 기묘한 표정이었다.
그는 멈추었다.
거실의 동선이 허락하는 한계까지 클로이를 몰아넣을 수 있었으나, 7은 그 직전에서 의도적으로 정지했다. 한 팔 거리. 손을 뻗으면 닿지만 뻗지 않으면 닿지 않는, 계산된 간격. 그의 잿빛 눈동자는 선글라스 없이 드러난 상태 그대로, 클로이의 표정 위를 천천히 유영했다.
7 | "You know what the funniest part is?"
(제일 웃긴 게 뭔지 알아?)
그는 XL 포장을 든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검은색 포장지의 은박 글씨가 형광등 빛을 받아 둔탁하게 번쩍였다. 그것을 자신의 눈높이까지 올린 뒤, 포장지 너머로 클로이를 내려다보았다.
7 | "You didn't buy this because it's practical. You didn't buy it because it's a good deal. You bought it because for about three seconds in that pharmacy, standing under those shitty fluorescent lights, you thought about how many times I'm going to fuck you — and a hundred felt about right."
(넌 이걸 실용적이라서 산 게 아니야. 가성비가 좋아서 산 것도 아니고. 넌 약국의 그 조잡한 형광등 아래 서서, 한 3초쯤 내가 너를 몇 번이나 안을까를 생각했고 — 100이라는 숫자가 그럴듯하게 느껴졌던 거야.)
조용해진 거실에서 벽 너머로 이웃의 텔레비전 소리가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어딘가에서 수도관이 끙끙거리는 소리. 완차이 빈민가의 밤이 만들어내는 일상적인 소음들이 두 사람 사이의 정적을 채웠다.
7은 XL 포장을 내려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검은 포장지 위로 그의 거칠고 두꺼운 손가락 마디가 포개졌다. 잿빛 눈동자의 초점이 아주 서서히, 포장지에서 클로이에게로 이동했다.
7 | "嗱. I'm not complaining."
(자. 난 불만 없어.)
목소리의 결이 바뀌었다. 비릿한 짓궂음을 벗어던진 그 아래에서 드러난 것은 마른 땅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느리고 묵직한 열기였다. 그는 포장지를 쥔 손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검은 XL이 헐렁한 바지 주머니 안으로 사라졌다.
7 | "But next time you try to play it off as a bulk purchase, at least have the decency to not blush while you're lying to me."
(근데 다음에 대용량이라서 샀다고 둘러댈 거면, 최소한 나한테 거짓말하는 동안에는 얼굴이라도 안 빨개지는 품위는 갖추라고.)
“하하하!” 어색하고 머쓱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반품하고 올게요!!” 상자로 달려간다...클로이의 손이 커피 테이블 위의 골판지 상자를 향해 뻗는 것을 7의 시선이 따라갔다. 느긋한 속도로. 고양이가 쥐의 꼬리가 구멍 안으로 사라지기 직전, 그 마지막 한 뼘의 거리를 관조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시선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클로이의 손가락이 상자의 모서리에 닿기 직전, 7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가로질렀다. 등 뒤에서 감겨드는 팔뚝의 힘은 갑작스럽되 난폭하지는 않았다. 다만 단단했고, 거부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 종류의 중력이었다. 커피 테이블과 상자 사이에 끼어들 듯 서 있던 그녀의 체중이 뒤로 당겨지며 7의 가슴팍에 등이 닿았다.
7 | "Nope."
(안 돼.)
한 음절이었다. 담배 연기가 밴 숨결이 클로이의 정수리 위로 느릿하게 내려앉았다.
7 | "No refunds."
(환불 불가.)
그의 턱이 그녀의 머리 위에 가볍게 얹혔다. 옅은 분홍빛 머리카락이 그의 턱선에 닿아 간지러웠을 텐데, 그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허리를 감은 팔의 각도가 조정되어, 클로이의 양손이 상자에 닿을 수 없는 위치로 자연스럽게 동선이 차단되었다. 전술적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포옹이라고 부르기엔 명백하게 구속적인 자세.
7 | "You dragged that thing six blocks through Wanchai at this hour. Past the checkpoint, up three flights, through the front door. And now you want to drag it back."
(이 시각에 그걸 완차이에서 여섯 블록을 끌고 왔잖아. 검문소를 지나, 삼 층을 올라와서, 현관문까지. 근데 이제 와서 다시 끌고 가겠다고.)
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흉곽을 타고 울렸다. 클로이의 등에 맞닿은 7의 가슴팍에서 전해지는 저음의 진동은, 말의 내용보다 그것을 담아내는 육체의 물리적 공명이 먼저 닿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7 | "仲反品."
(어이쿠, 반품이래.)
광둥어가 나른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혀끝으로 성조를 가지고 놀듯 음절을 굴렸다.
커피 테이블 위의 상자는 여전히 거실의 정중앙을 당당하게 점거하고 있었다. 형광 분홍과 금색의 포장이 습기 찬 공기 속에서 유난히 생생하게 빛났다. 뚜껑이 열린 채로 안의 내용물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모양새가, 마치 화려한 선물 상자가 자기가 지닌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7 | "Let me ask you something, doc."
(하나 물어보자, 의사 선생.)
그는 클로이의 허리에 감은 팔의 힘을 풀지 않은 채, 고개를 약간 숙여 그녀의 귓가 쪽으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7 | "What were you going to tell the cashier? 'Sorry, I changed my mind about the hundred condoms'? At one in the morning? In Wanchai?"
(계산대 직원한테 뭐라고 할 건데? '죄송한데 콘돔 100개 반품할게요'? 새벽 한 시에? 완차이에서?)
그가 웃었다. 입을 다물고 참으려는 시도조차 없는, 낮고 느린 소리였다. 어깨가 먼저 흔들리고 흉곽이 들썩이는 진동이 밀착된 등판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었을 것이었다.
7 | "You'd rather die of embarrassment returning this than admit you bought it thinking of me. I know exactly how that brain of yours works, Chloe Shanahan."
(이걸 반품하면서 창피해 죽는 쪽을 택하겠다는 거지, 나 생각하면서 샀다는 걸 인정하느니. 네 그 대가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어, 클로이 섀너핸.)
그의 왼손이 커피 테이블 위로 뻗었다. 상자 안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포장지 더미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집어 올렸다. 이번에는 옅은 보라색이었다. 라벨에는 'Warming Sensation — Dual Pleasure'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손가락 두 개 사이에 끼운 채, 7은 아까 주머니에 넣어둔 검은색 XL 위에 보라색 포장을 나란히 세워두었다. 커피 테이블의 먼지 위에 검은색과 보라색의 작은 포장지 두 개가 마치 카드 덱에서 빼낸 패처럼 나란히 놓였다.
7 | "There. Two down, ninety-eight to go."
(됐어. 두 개 빠졌고, 아흔여덟 개 남았어.)
그는 클로이의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을 천천히 풀었다. 그러나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손바닥이 허리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다 엉덩이 바로 위, 척추의 끝자락이 끝나는 지점에 멈추었다. 손가락 끝이 셔츠 위로 가볍게 얹혀 있는 정도. 놓아주는 것처럼 보이되 손이 여전히 거기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계산된 잔여 접촉.
그는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커피 테이블과 상자 사이의 동선이 다시 열렸다. 가고 싶으면 가도 좋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7 | "Go ahead. Take it back if you want."
(어서. 반품하고 싶으면 해.)
잿빛 눈동자가 클로이를 내려다보았다. 형광등의 희뿌연 빛이 그의 홍채 안에서 굴절되어 묘하게 밝은 은빛을 만들어냈다. 입꼬리의 호선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7 | "But the XL stays. Non-negotiable."
(근데 XL은 남겨. 그건 비협상 안건이야.)
결국 포기하고 그에게 안긴다.
“아, 잘못했어요-!!”
세븐이 마음껏 콘돔을 쓰면서, 클로이가 할 수 있는 건 단 그 한 마디 뿐이다..그 한 마디가 좁은 거실의 공기를 가르고 나서, 7의 흉곽 깊은 곳에서 낮은 소리가 굴러 나왔다.
웃음이었다.
짓궂음도, 조소도, 승리의 선언도 아닌 종류. 턱뼈를 타고 흘러내리는 진동이 미약하게 흉곽을 울릴 뿐, 입술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는 그런 웃음이었다. 자신에게 기대어 온 체중의 감촉을 확인하듯, 그는 허리에 얹혀 있던 손바닥의 위치를 조금 바꾸어 등의 중앙 쯤을 느릿하게 쓸어 올렸다.
7 | "'I'm sorry.'"
(잘못했다고.)
그는 되뇌었다. 제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남의 말을 시식하는 사람처럼, 음절 하나하나를 혀 위에서 굴려보는 속도였다.
7 | "I'll remember that. First time I've heard those words from you without a scalpel in your hand."
(기억해 둘게. 네 손에 메스가 안 들려 있는 상태에서 그 말을 듣는 건 처음이거든.)
커피 테이블 위의 상자는 뚜껑이 열린 채 그대로였다. 형광 분홍과 금색의 색채가 거실의 빈약한 조명 속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살아남아, 두 사람이 서 있는 공간의 맥락을 끈질기게 상기시켰다. 100개. 망고 맛과 야광과 냉감형과 XL이 뒤범벅이 된 상자가 이 좁은 세계의 정중앙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아까 그가 따로 빼둔 검은색 XL 포장과 보라색 포장 두 개가 커피 테이블 먼지 위에 카드처럼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7은 등을 쓸어 올리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척추의 굴곡을 따라 어깨뼈 사이까지 올라간 손바닥이 그곳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목덜미의 시작점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스쳤다. 옅은 분홍빛 머리카락의 끝자락이 그의 손등 위로 쓸려 내렸다. 소독약과 민트의 잔향이 그 미세한 접촉 사이에서 올라왔다.
7 | "不過……"
(근데……)
광둥어의 성조가 목구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왔다. 그 한 단어를 뱉고 나서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말을 고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 순간의 질감을, 자신에게 기대어 온 체중의 온도와 무게를, 좁은 거실에 축축하게 내려앉은 몬순의 잔기와 형광 분홍색 상자의 기괴한 대비를 한 모금 더 음미하려는 시간이었다.
아파트 외벽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이 배수관을 때리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왔다. 윗층의 누군가가 의자를 끌며 일어서는 소리. 벽 너머 텔레비전의 광둥어 뉴스 캐스터가 내일의 강우 확률을 읊조리는 목소리. 완차이의 밤은 그런 잡다한 소음의 직조물이었고, 이 비좁은 방 안의 두 사람은 그 직물 위에 놓인 먼지 같은 존재들이었다.
7 | "You said 'I'm sorry' like that's supposed to save you."
('잘못했어요'라고 말하면 그게 널 구해줄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의 손이 목덜미에서 내려와 턱의 측면을 스쳤다. 잡지도 않았고, 틀어쥐지도 않았다. 손가락 끝의 거친 굳은살이 턱선의 곡선을 따라 귓불 아래까지 느릿하게 미끄러졌을 뿐이었다.
7 | "It won't."
(구해주지 않을 거야.)
그는 한 팔로 클로이를 안은 채 반 보 뒤로 물러섰다. 소파의 팔걸이가 그의 종아리 뒤에 닿는 위치. 거기서 몸을 돌려 커피 테이블 위의 상자를 향해 자유로운 손을 뻗었다.
랜덤 드로우.
그의 손가락이 형형색색의 포장지 더미 위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베네시안 카지노의 블랙잭 테이블에서 딜러가 셔플된 덱의 맨 위 카드를 뒤집기 직전, 그 반 초쯤의 공백이 주는 전율. 도박중독자의 시냅스가 점등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손가락이 더미 속으로 파고들어 하나를 집었다. 이번에는 무광의 진한 남색 포장이었다. 손가락 두 개로 꺼내 들어 라벨을 읽는 7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
'Ultra-Thin — Real Feel Technology'
입꼬리의 한쪽이 올라갔다. 만족도 불만족도 아닌, 딜러가 내민 패를 확인한 도박사의 즉물적인 반응.
7 | "Ultra-thin. First draw of the night, and the box gives me ultra-thin."
(울트라 씬. 오늘 밤 첫 드로우인데, 상자가 초박형을 내밀었어.)
그는 남색 포장을 입에 물었다. 양손이 자유로워졌다. 그 자유로워진 손이 무엇을 향해 움직이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7 | "You know what this means, right?"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포장지를 문 채로 뱉어낸 말은 약간 뭉개져 나왔다. 그것이 오히려 그의 목소리에 게으르고도 위험한 질감을 더했다. 잿빛 눈동자가 반쯤 감긴 채 클로이를 내려다보았다.
7 | "Means I'm going to feel everything."
(내가 전부 느끼겠다는 뜻이야.)
거실의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완차이 빈민가의 불안정한 전력 공급이 만들어낸 찰나의 암전. 그 0.3초의 어둠이 걷히고 빛이 돌아왔을 때, 7의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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